프랑스 혁명은 위계질서에 의존한 절대왕정에 강력한 타격을 가해 새로운 근대시민사회를 이룩할 정치적 토대를 마련하고 농노제, 길드등의 봉건적 특성을 소멸시켰다. 그러나 이 혁명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상에 머물렀던 계몽정신이 현실적으로 정치, 사회에 반영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점이다.
급진적 혁명과정에서 파생된 여러가지 부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만인의 자유와 평등이 현실적으로 수용될 수 있고 수용되어야 하는 가장 이성적인 인간존재의 양상임을 널리 공포한 데 있다. 전투적 민족주의, 급진적 변화를 위한 비상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공포에 의존한 정치, 극단적 흑백논리의 강요 등이 빚어낸 숨막히는 생존 분위기에 대한 불안, 사회성원 상호 간의 불신으로 인하여 역사 형성에 소극적이고 피동적 입장에 섰던 다수의 사람들이 유동하는 불확실성에 대해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던시기였다는 점도 중요한 시대적 여건의 하나로 지적된다.
프랑스 혁명이라는 짧지만 중대한 역사적 전환기에 나타난 의생활 변화의 특성을 사회배경과 관련지어 살펴보았다.
1. 정치적 자기표현으로서의 의상
혁명 초기 의상은 기존의 위계질서에 반발하며 평등을 추구하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의상에 반영되었다.
평민의 의상은 기존의 화려한 귀족 의상에서 벗어나 평범한 노동자들이 입는 옷의 바지, 짧은 조끼, 카르마뇰을 착용하며 계급 간의 차이를 허물고자 했다. 그들은 수(水)바지, 짧은 조끼(vest), 카르마뇰(carmagnole)을 발견했으며 이 복식 형태에 다 좋다는 이 계급에 부과되었던 억압에 대한 혁명적 투쟁정신의 의미를 불어넣어 혁명투사의 상징으로 착용하기 시작했다.
상퀼로트(sans-culotte)는 혁명가들의 상징이 되었으며 짧은 바지를 입지 않은 것을 통해 귀족 계급과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의상의 정치적 의미에서 의상은 단순한 옷차림을 넘어 정치적 신념과 소속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질서의 도립’ 혹은 ‘새로운 이념의 현실화’라는 과제는 필연적으로 사회 • 문화적 요소를 변화시키고 따라서 다른 영역과 더불어 의생활 변화를 일으켰다.
2. 남성복의 단순화 · 기능화 경향
남성복의 변화는 복잡하고 장식적인 귀족 복장에서 벗어나 실용성과 활동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로코코 스타일에서 기능성 중시하여 혁명 이전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로코코 스타일에서 벗어나 단순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변화했다. 획득된 복식 형태는 산업 혁명과 더불어 남성복의 우위를 차지했던 영국 복식의 기능성 • 단순성과 연결되면서 종래의 남성복과는 성격이 달라지는 새로운 성향을 보이게 되었다.
색상의 변화로는 이전의 화려한 색상에서 벗어나 어둡고 차분한 색상을 선호하게 되었다. 혁명 이전까지는 장식적이었지만 혁명 이후에는 남성 복장이 실용적이고 단정한 형태로 변모했다.
3. 유니폼의 애호 성향
새로운 공무원 복장은 프랑스 혁명 이후 관료들의 복장을 통일하여 권위를 부여하고 소속감을 높이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1795년의 집정 정부는 공무원 복원의 제정에 열성을 쏟아 회원이 원로원 의원과 공무원들 심지어는 시민에 파견된 공무원들까지 모두 새로운 직위를 표시하는 새 공무원복을 착용하게 하였다.
단정한 의상으로 이러한 유니폼은 단순하고 단정한 디자인을 채택하여 국민 정신의 통일을 꾀하였다. 이러한 신정부의 제복에 대한 집권층이 단일한 의상을 통해 국민 정신의 통일을 꾀하고자 했던 것으로 복식사상 상당히 특이한 현상을 보여 준다.
4. 이상향의 표현으로서의 의상
고전주의 스타일은 혁명 이후 고전주의 스타일이 유행하며 제정 이전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복식과는 대조적인 경향을 보였다. 제정 이전의 민주적 로마 공화국은 혁명가들에 의해 로마에서 가장 숭배했던 시대로 미화되고 이에 따라 정부의 제도, 일력(日曆), 가구 및 건축양식을 모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결하고 단정한 복식에서도 고대 그리스 로마의 영향을 받아 간결하고 단정한 형태가 선호되었다. 회생된 고전 열광적으로 고대 로마나 그리스 양식을 추구하였다. 남성복의 반복된 고전적인 복식은 양, 귀의 자유스러움과 개인적인 느낌으로 인해 착수를 제외하고는 프로코토 판박이에도 도취되었다고 볼 수 있다.
5. 군복의 영향
군복의 중요성으로 혁명과 함께 군복은 단순한 제복을 넘어 혁명의 이념과 정신을 상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프랑스의 미국 독립 전쟁 참여 나폴레옹 원정, 대륙체계화의 전쟁에서 프랑스의 우위성 등은 프랑스 국민을 매력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군복 스타일의 유행으로 군복의 디자인은 실용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패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군복 외에 군인을 흉내 낸 현상이 팽배하면 펠렌델 모자가 유행하고 군복과 유사한 색과 형태의 롱코트를 많이 입었다.
6. 윤리적 퇴폐
과장된 복식 유행으로 혁명 이후 사회적 혼란과 함께 과장되고 퇴폐적인 스타일이 유행했다. 사회 전체가 전 전쟁이나 사회 개혁으로 인해 파생되었던 사회 분위기의 경직성, 공포감에서 벗어나면 언제나 지나친 엄격함과 절제 • 억압에 대한 반동이 뒤따른다.
앙크루아얄블과 메르베이유즈는 지나치게 과장된 의상과 헤어스타일로 자신을 표현하며 기존의 사회적 규범에 저항하는 경향을 보였다.
앙크루아얄블(incroyables)과 메르베이유즈(merveilleuses)군들이 이들로 이들은 개의 귀 형태로 지저분하게 기른 머리를 입술을 가리도록 돌돌 말아 높이 세운 크라바트 위로 늘어뜨리고 거대한 리비어(reverte)와 칼라를 단 외투를 여며 지지 않고 풀어 놓은 채 딴 주렁주렁 달린 구겨진 바지 위로 잡다한 색깔의 각반(繙絆)을 치고 갈매기 모양으로 목이 벌어진 구두를 흘러내리게 신고는 단 장신 대부러진 나무 막대기를 휘두르며 우아함 대신 헝클어짐을 연출해 보이려 애썼다.
혁명 시기는 사회적 변혁과 함께 복식에도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의상은 단순히 입는 것을 넘어 정치적 신념, 계급의식, 개인의 가치관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혁명 이전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복식에서 벗어나 단순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이 선호되었으며 군복 스타일과 과장된 퇴폐적인 스타일이 공존하는 등 다양한 양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 전체의 변화를 반영하며 복식 문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출처: 石山, History of fashion Plate II(17,18세기), 文化出版局, 1989,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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