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양식의 남녀의상의 종류와 형태에는 우선 남자의 의상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한다. 16세기에 육체를 극도로 과장했던 의상은 17세기가 되면서 네덜란드의 간편하고 실용적인 시민복식의 영향으로 일시적으로 기능적인 의상으로 변화하였다. 네덜란드의 국력이 강성한 동안 유럽 각국에 영향을 미쳤는데 네덜란드풍의 복식과 전쟁의 영향으로 재단과 색상의 우아한 기상풍 복장이 유행하였다. 1630년대 프랑스 군인들이 목을 보호하기 위해 머플러를 두른 것이 기원이 된 크라바트가 등장하여 남성복에서 넥웨어로 유행하였다. 영국에서는 크롬웰의 청교도적인 정치가 복식에도 영향을 미쳐 어두운 색상에 장식이 별로 없는 의상이 유행하였다.
루이 14세 때는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넘어가는 왕정의 극성기로, 왕을 중심으로 한 상류층의 호화로운 사교생활과 언어, 예의, 복장은 유럽에 유행되어 파리는 유럽 외교와 문물 및 유행의 중심지가 되었다. 왕정이 강화되자 귀족풍의 복식이 궁정을 지배하게 되었고, 귀족풍의 복식은 네덜란드 복식의 영향으로 대두된 시민복식과 융합하여 독특한 바로크 양식을 성립하게 되었다.
17세기에 푸르푸엥 역시 일반복식의 경향과 같이 실용적으로 변화하였으나 초반기인 약 10여년 간은 어느 정도 르네상스 스타일의 요소가 잔존하였다. 패드는 사라졌으나 숄더 윙, 작은 러프 장식 등이 사용되었다. 소매에 슬래시와 퍼프가 여전히 사용되었고, 소매는 조각으로 되었다. 턴 백 커프스가 달렸으며 퍼프 및 쇽더 윙, 슬래시 등이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허리선 밑으로 짧은 스커트처럼 4~6장의 페플럼이 사용되었다. 1640년대 푸르푸엥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 허리선이 다소 올라가고 허리선 밑에 달린 페플럼의 길이가 더욱 짧아져 바지의 윗부분이 노출되기 시작하였다. 칼라는 작게 세운 스탠딩 칼라를 붙이고, 여민 부분에 핸드 스트링이라 불리는 작은 리본을 달았다. 폴링 칼라는 반다이크 칼라로도 알렸졌다. 고급스러운 레이스에 자수를 놓은 재료로 만들었는데 목에서부터 어깨까지 내려오는 것이 그 시기의 특징적이였다. 초기와 달리 바로크 중엽에 왕정이 강화되었고, 모든 문화가 그러하듯 복식 또한 어느 정도 귀족풍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17세기 말기인 1680년경 궁정의 남성이나 멋쟁이들의 푸르푸엥은 옷의 길이와 소매의 길이가 아주 짧아지고 소매 밑과 허리 밑으로 슈미즈가 넘치듯이 빠져나오고 푸르푸엥은 상의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축소되었다.
17세기 후반에 나타난 남자용 상의로 영국에서는 웨이스트 코트라고 불리었다. 쥐스토코르와 슈미즈 사이에 착용하는 중간 의복으로 푸르푸엥이 단순하게 변한 형태로 본다. 실내에서 착용되었으며 외출할 시에는 베스트 위에 쥐스토코르를 입었다. 초기의 베스트는 소매와 몸통이 꼭 맞았는데 쥐스토코르보다 길이가 조금 짧고, 앞트임이며 많은 단추로 고정하였다. 칼라는 없고 대부분이 앞의 좌우에 주머니가 붙었으며 귀족은 견직물이나 벨벳으로 만들었고 앞면에 자수를 놓는 등 장식성이 놓은 것도 있다. 점차 변화하여 후에는 소매가 없어지고 오늘날에는 신사복의 조끼로 변화하였다.
루이 14세 때 1670년경부터 귀종풍에 대항하여 착용하기 시작한 남자의 상의로 17세기 중엽 남자의 상의였떤 푸르푸엥이 특성을 잃어 감에 따라 쥐스토코르를 대신 착용하기 시작하였다. 칼라가 없고 초기에는 허리가 헐렁한 H라인의 스트레이트 실루엣이었으나 후반에 들어서면서 몸을 가늘게 조이고 허리에 밑단을 향해 우아하게 넓어지는 실루엣이 되었다. 초기에는 시민적이었으나 점차 궁정의 귀족복장으로 정림된 쥐스토코르는 자수 또는 금은의 장식으로 신분이나 계급, 특권 등을 나타내었다. 가는 허리가 특징인 구성방법은 발달된 봉제기술로 남성복의 발전에 공헌하였다. 재료는 초기에 시민풍의 장식이나 색상으로 검소한 울을 사용하였으나, 점차 귀족풍으로 바뀌면서 색상이 화려해져갔고 벨벳이나 금,은사를 넣어 짠 실크나 다채로운 무늬의 실크 등이 사용되었다. 18세기 후반에 사라지지만 아비프록, 모닝코트, 턱시도 등으로 그 기본형이 어어지고, 오늘날 남성복의 시조를 이루었다.
오 드 쇼스는 16세기 호박처럼 부풀렸던 바지의 프랑스의 이름이다. 17세기가 되면서 패드를 넣지 않고 모양이 축소되어 어느 정도 풍성한 반바지의 형태가 되었으며 길이는 보통 무릎까지 왔으나 점차 길어졌고 명칭은 퀼로트가 보편화되면서 점차 사라졌다. 퀼로트는 오 드 쇼스의 폭이 점차 좁아지면서 몸에 꼭 맞게 된 바지를 일컫는 말이다. 퀼로트는 상의인 푸르푸엥과 착용하면서 푸르푸엥에 달린 끝을 허리 구멍에 꿰어 연결하였으나 푸르푸엥이 상의의 역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짧아지자 허리를 벨트로 죄었다. 처음에는 무릎 길이로 꼭 맞게 입었으나 1680년 이후에는 활동하기 편할 정도로 풍성하게 하였으며 허리선에 주름을 잡았고 무릎 부분을 꼭 끼게 착용하였다. 끝부분은 리본 루프의 다발로된 리본끈으로 묶기도 하였고 단추로 채우기도 하였다. 바로크 시대에 착용하기 시작한 퀼로트는 로코코 시대에도 계속 착용하였지만 형태는 변화하였고 그 명칭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랭그라브는 루이 14세때인 17세기 중엽에 프랑스에 등장한 의복이다. 농부들이 착용했던 옷에서 실용성을 취하여 유럽 가국에서 착용하면서 신사들 사이에 모드로 받아들여졌다. 그 형태 때문에 영국에서는 페티코트 브리치스라고 불렀다. 스타일은 2가지가 있는데 초기의 것은 간단한 긴 천을 허리에 둘러메고 짧은 스커트 형태로 궁정에서만 착용하였고, 그 뒤 점차 형태가 변하면서 양쪽으로 갈라진 넓은 바지 형태의 디바이드 스커트와 같은 모양이 되어 일반인들까지도 널리 착용하였다. 속에는 무릎길이의 퀼로트를 받쳐 입어 퀼로트가 보이도록 하였다. 랭그라브는 바로크 복식의 특징적인 의복으로 마치 여성복과 같이 레이스나 러플 및 리본 루프로 정교하게 장식하였다.
다음자에서는 바로크양식의 여자 의상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자.
출처= ⓒ스페인프라도 미술관 홈페이지
1724년 작, “스페인왕 카를로스 3세의 초상 (쥐스토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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